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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지구와 쉘터

기후 변화로 지구는 황폐화되고 사람이 살 수 없게 되어 우주로의 이주를 계획한다. 지구와 달의 궤도면 사이에 인류가 살 수 있는 '쉘터'를 만드는 데 성공하고 수십 년에 걸쳐 이주한다. 80여 개의 쉘터, 인류가 자리를 잡아갈 때쯤 일부의 쉘터들이 모여 스스로를 아드리안 자치국이라 칭하며 지구와 다른 쉘터를 공격하기 시작한다. 지구에 남겨진 인류는 이 내전에 필요한 물품을 생산하며 전쟁의 부속품과 같은 생활을 이어간다. 여기 연합군의 리더 윤정이(김현주) 팀장이 있다. 수많은 작전에서 큰 성과를 보여준 최정예 용병이다. 하지만 단 한 번의 작전 실패로 식물인간이 되고 만다. 군수회사 크로노이드 연구소는 뛰어난 용병이었던 그녀의 두뇌를 복제해 최고의 전투 AI를 개발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는 윤정이의 딸 윤서현(강수연)이다.

정이 프로젝트

윤정이의 복제된 뇌 데이터를 통해 전투 시 활성화되는 뇌의 반응을 연구해 완벽한 AI를 만들려 하지만 번번이 시뮬레이션에는 실패한다. 이유를 알 수 없는 특정한 전투 시뮬레이션을 성공하지 못하는 정이를 두고 군 관계자들은 회의적인 반응을 보인다. 서현은 뇌 지도 파악을 위해 실패한 복제물과도 늘 면담 후 폐기한다. 새로 들어온 직원에게 서현은 아픈 자신 때문에 용병으로 돈을 벌어야 했던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서현은 퇴근길 무인 모노레일 안에서 한 모녀를 보고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어릴 적 서현의 수술날, 엄마는 평소처럼 작전에 나가야 하고 서현은 엄마 없이 수술을 견뎌야 했다.

윤리테스트를 포함한 정밀 검사를 마친 서현에게 의사는 폐암이 장기 전체에 퍼져있고 남은 시간은 고작 3개월이라고 말한다. 의사는 뇌 복제를 받고 의체를 옮기라는 권유를 하는데 방법은 소득 수준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A타입은 하나의 의체에 자신의 뇌만 복제해서 대우와 권리 모두 가장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으나 비용이 높다. B타입은 하나의 의체에 하나의 뇌만 복제하지만 정부가 비용을 대는 것으로 결혼, 이주, 입양등의 제한을 받는다. 마지막 C타입은 기업에 뇌 데이터와 모든 권리를 넘기는 것으로 소유자가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다. 그 대가로 유족에게 많은 보상과 혜택을 제공하지만 인간으로서의 대우를 받지 못하고 존엄성조차 지킬 수 없다. 어릴 적 그날, 서현은 수술을 받고 깨어났지만 엄마는 잠이 들고 말았다. 죽은 건 아니었지만 식물인간 상태였던 엄마의 뇌는 어린 서현의 미래를 위해 C타입 복제가 되어 크로노이드의 소유물이 된 것이다. 다시 정이 프로젝트의 18번째 실험이 시작된다. 같은 시뮬레이션 실패를 막기 위해 연구소장 상훈(류경수)은 처음부터 평소와 다른 설정을 요청한다. 시뮬레이션이 시작되고 역시나 이번에도 전투의지가 잦아들며 실패를 예감할 때쯤 지금까지 확인되지 않은 새로운 뇌파가 감지된다. 상훈은 미확인 영역이 전투 AI의 핵심이라 확신한다. 다음날 서현을 포함한 연구 관계자들은 프로젝트 브리핑을 위해 크로노이드 본사를 방문한다. 하지만 상품개발부 이세연 상무가 나타나 회장님 대신 관련보고는 자신에게 하라며 상훈의 심기를 건드린다. 며칠 후 연구소에 방문한 회장은 서현을 불러 전쟁이 곧 종식된다며 이제 전투 AI는 필요 없어졌다고 말한다. 연구를 종료하라는 지시가 내려왔지만 상훈은 전투 AI에 대한 집착이 계속되고 정이 실험체의 몸을 절단하며 고통을 야기해서 미확인 영역에 대해 더 알아내려 한다. 보다 못한 서현이 제어 권한을 모두 가져와 상훈의 행동을 저지하고, 팀원들에게 정이프로젝트의 연구 데이터를 정리하라고 지시한다. 빈 실험실에서 정리된 자료를 확인하던 서현은 자료를 반출한 팀원이 있음을 확인하고 그를 연구실을 찾아간다. 그곳에서 정이를 성적으로 상품화하려는 테스트가 진행되는 모습을 목격한다. 실험실로 돌아온 서현에게 상훈은 본사에서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거란 얘기를 하고 서현은 정이 18호와 대화를 시도한다. 그 마지막 대화에서 정이는 작전날 딸이 행운을 빌어준 인형을 잃어버렸고 그 죄책감과 미안함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몰랐던 엄마의 진심을 이제야 알게 된 서현은 오열한다.

자유

다음날 마지막 시뮬레이션이 있는 날, 서현은 뇌 데이터에서 딸과 관련된 부분을 몰래 삭제하고 정이 19호에게 은밀한 작전에 대해 설명한다. 마지막 실험도 실패로 끝나고 모두가 해산하자 정이 19호는 연구원들의 눈을 피해 탈출을 시도한다.

상훈은 시뮬레이션 장면을 다시 돌려보고 정이가 총에 맞지 않았음에도 죽은 것처럼 위장해 탈출했다는 것을 깨닫고 경보시스템을 발동한뒤 전투경찰 AI들을 출동시킨다. 정이 19호와 경찰 AI들과의 전투가 벌어지고 정이팀장은 팔이 잘리며 궁지에 몰린다. 죽음의 위기에서 서현이 도와 정이 19호의 뇌를 다른 실험체에 이식한 뒤 연구소 밖으로 함께 탈출한다. 서현과 정이는 모노레일에 몸을 싣고 한숨 돌리는데 그 안에 상훈이 타고 있었고 상훈과의 몸싸움을 벌이다 서현이 총에 맞는다. 상훈 역시 회장이 만든 로봇이었기에 정이와 격렬한 싸움을 벌이고 결국 모노레일 밖으로 떨어져 나가고 만다. 죽어가는 서현은 정이에게 도망가서 자유롭게 살라며 애원한다. 정이는 어릴 적 서현에게처럼 볼을 비비고 떠난다.

느낌

국내에선 혹평이 꽤 많은데 해외에선 순항 중인 듯하다. 나 역시 그리 재밌다고 느끼진 않았는데 이유는 어설픈 완성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CG가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다. 사건의 흐름들이 매끄럽지 못하고 앞뒤의 개연성이 묘하게 이질적인 느낌이라서 끝까지 보고 난 뒤 이게 무슨 결말인가 싶은 기분이 든다. 미래의 AI 소재를 깔고 모녀간의 신파로 마무리하는 오묘한 전개가 개인적으로는 몰입이 잘 되지 않았다. 하지만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 있다. 단순하게는 미래에 대한 상상도 해볼 수 있고, 내가 죽음을 앞두고 있다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란 궁금하기도 하다. 근본적으로는 인간의 삶과 죽음, 윤리, 인간존엄에 대한 고찰과 같은 철학적일 수도 있지만 인간이기에 한 번쯤은 생각해보아야 하는 문제들을 짚어주고자 한 듯싶다. 연상호 감독은 정이를 치밀하고 복잡한 서사가 아닌 단순한 흐름을 가진 작품이라고 밝혔다. 그래서인지 짧은 단편소설을 읽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의 상상력과 실험정신은 박수를 쳐주고 싶다. SF영화의 거대한 세계관이나 화려한 비주얼보다는 인간 그 자체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게 관람 포인트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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